오늘하면 생각나는 거 아랫목

손톱, 머리카락, AK.



그때가 백일휴가 복귀하고 하루나 이틀 뒤였을텐데 일이터진 거다. 그러니까 당연히 비상 떨어지고 적지종심작전한다고 적지물자 꺼내고 손톱이랑 머리카락 봉투에 넣고 완전군장하고 뉴스 시청하고.



난 그거부터 생각난다. 군 생활하면서 위험하다, 싶은 적이 몇번 있긴 했지만 이렇게 제대로 망했다라는 생각이 들 땐 그때가 유일했다. 더구나 이등병이었단 말이다.


하루 이틀이 좀 지나고도 "갑자기 꼬이는 거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고.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우리 부모님 기껏 백일휴가 나온 놈 보내놨더니 일터졌다고 딱 쓰러지실 뻔 했단다.


내가 직접 그 현장에 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때 그 일은 내게 잊을 수 없는 일이다. 전쟁이란 게 터지면 내가 그 한복판에 놓이게 될 처지. 그런 건 다시 겪어보진 못했다. 뭐 그 후로 공화국 동무들 비무장지대에서 장난질 좀 치고 그랬다만.


뭐랄까, 좀 이기적이 된 듯한 느낌도 든다. 서해교전 때 전사하신 분들 얘기 들을 때마다 그분들 생각은 커녕 그때 용케 일 안터졌다, 라는 생각부터 드니까. 씁쓸하지. 일처리한 것도 보면, 나도 나름대로 그때 간접적인 관계에 있다면 있는 건데, 그런 나도 눈앞이 깜깜했는데 정작 전사한 분들의 문제가 그렇게 엉클어지는 걸 보니 답답하기도 했고. 그나마 이걸 계기로 좀 바뀌고 있으니 다행이다.


어쨌든 그때 그 일은 절대 잊지 못할 거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내가 죽는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던 때니까.





그런 일을 막기 위해 순국하신 357정 승조원들께 감사하며 명복을 빕니다.

덧글

  • 을파소 2008/06/29 02:05 # 답글

    명복을 기원하며, 그런 희생은 다신 없기를 빕니다.
  • 검투사 2008/06/29 02:41 # 답글

    저 또한 96 대침투 작전 때의 어느 날인가... 비슷한 것을 느꼈었지요...
  • 바이칼 2008/06/29 03:34 # 답글

    그때 아제는 신병이었구만요.... 난 당일 서울에 모 여성동지를 만나고 있었....(염장이냐?)
  • 심재호 2008/06/29 07:29 # 삭제 답글

    그러고보니, 6월은 어느분의 말씀처럼 우리에게는 슬픔의 달이네요.
  • 【天指花郞】 2008/06/29 16:51 # 답글

    선배 전우들에게, 묵념.
  • 정호찬 2008/06/29 19:06 #

    그분들이 편히 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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