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8월 01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예전엔 서부극이 미칠듯이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미국 정서에 맞기도 했지만 단지 미국만이 아닌 전세계적으로 유행을 탔었으니까.
그런데 이게 돈이 되는 게 보이니까 다른 나라도 따라하고는 싶다. 문제는 다른 장르와 달리 이건 미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는 것. 그나마 같은 백인권인 어디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같은 곳은 멕시코 부근이라고 해도 할 말 없는 대신, 일본이나 한국은 뭐 방법이 없는 거다. 그렇다고 포기했을까?
아니다. 방법은 있다. 서부하면 황량한 벌판과 그곳을 개척하는 농민들, 그리고 그들을 수탈하는 악당들과 그들 휘하의 총질하는 졸개들, 마지막으로 알 수 없는 과거를 지니고 떠돌아다니는 사나이가 있는 곳 아닌가? 그럼 과연 동양엔 그런 게 없을까?
있다. 바로 만주인 것이다.
딱 봐도 그림이 나온다. 1930년대 같은 즈음에 만주는 그야말로 무법지대였다. 크게는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이 세력권에 넣기 위해 힘을 썼고 작게는 당시 개발붐을 타고 퍼져나간 조선, 일본인 정착민들이 자리 잡으려 했고 이런 이들을 노린 마적떼들이 설쳤고 우리 역사적으론 독립군들이 싸웠던 곳이니까.
그래서 예전에 만주 웨스턴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숱한 만주극들이 쏱아졌던 것이다. 그러고도 모자랐는지 일본인 진짜 일본인 카우보이가 나오는 거 찍었고 우리나란 당나귀 무법자 같은 희작을 찍어냈지만.
사실 단순히 짝퉁이라고 하긴 뭐하다. 그당시 만주라면 서부극의 영향이 아니더라도 영화 제작자들에게 얼마든지 떡밥을 뿌릴 수 있는 소스가 되기엔 충분하니까. 그래서 놈놈놈은 단순히 예전의 '더 굿, 더 배드, 더 어글리'나 '쇠사슬을 끊어라'의 후광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도 그당시 작품들에 대한 오마쥬는 철저하게 지켰다는. 송강호 모자에 총질하는 거나 드럼통 조각은 정말.
우성이형은 그야말로 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화보집 수준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흐트러지지 않는 롱코트에 머플러,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장총을 휘둘러대는 모습이란, 원래 정우성팬은 여자보다 남자가 많다는 말도 있듯이 그냥 보는 사람 주먹을 불끈 쥐게 하는 모습. 솔직히 연기발이야 달린다만 그걸 스타일로 메꿔주니까. 배우에게 연기력은 우선적인 요소지만 이런 오락 영화에서 스타일도 만만치 않게 중요하고(주지사가 연기 잘해서 스타된 건 아닌께) 솔직히 말해 연기력이 뭐 필요 있는 캐릭터도 아니고. 아닌 말로 담 배 한가치 물고 황야를 배경으로 서있는 것만 해도 그림이 나오는데. 어차피 대사도 많은 거 아니니까;;;
사실 가장 멋있는 캐릭터 자체가 박도원이다. 박창이 같이 찌질하길 하나 윤태구 같이 구질구질하길 하나. 오로지 폼 만땅. 게다가 전투력도 최강. 일본군과 싸울 때 보면 이건 뭐 삼국지에서 단기필마로 적군 속에 뛰어든 조자룡 같은 이미지니.
송강호는 그야말로 이상한놈. 약간 모자란 듯 하면서도 총싸움은 잘하고 인정사정 없는 듯 하면서도 고아들 챙겨주는 인정도 있고 그렇게 나쁜놈은 아닌 거 같은데 알고 보니 ㅎㄷㄷ이었다는 것처럼. 송강호와 최민식을 두고 한 말이 있는데 최민식은 어떤 연기를 해도 최민식처럼 보이는데 송강호는 뭘해도 그 배역처럼 보인다는 점.
이병헌은 다른 건 다 좋은데 목소리 때문에 악당 포스가 깍인다는 분도 계시던데 나 같은 경우는 오히려 그런 착한 목소리(?) 때문에 이 캐릭터가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지더라. 그냥 초강력 악당이 아니라 그것과 그것에 집착하고 자기가 아니면 안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인간. 오히려 이런 캐릭터에 뭔가 여린 감성을 보여주는 게 하나 있어야 돋보이겠지.
확실히 이야기 흐름이 끊어지는 감이 있고 그냥 낭비되는 캐릭터도 있긴하다. 이 부분은 칸버전에서 다 설명된다고 하던데 일단 두고 볼 일.
총기는...... 도원이야 건맨 타입이니 윈체스터나 좌우쌍대 엽총, 리볼버 쓰는 건 무난. 창이도 웨블리 리볼버 같이 간지나는 리볼버 쓰는 거 인정. 태구 같은 경우 리볼버가 아닌 자동권총을 쓰는데 말도 아니고 오토바이나 차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서부극 같은 분위기에 그런 최첨단(?) 장비를 애용하는 태구의 캐릭터에 더 맞자도 본다. 왜 저 시절에 P-38이냐 하는 것도 많은데 어차피 한국 영화에서 P-38은 시대를 막론하고 뭐 좀 특별한 놈들이 쓰는 총이었다. -.-; 80년대 서울이 배경인 액션 영화에도 나오고 아무리 못봐줘도 70년대 인민군 군관이 들고 나오기도 하는데. 하긴 놈놈놈의 경우 나올 시기 자체가 안됐다는 게 문제지만. 그런 점에서 볼 때 P-38보다 P-08이 더 나았을 듯. 그거라면 시기도 맞고 생긴 것도 더 간지 나니까.
근데 왜 45구경은 안나오는데? 지금 45구경 무시함? 콜트45 듀얼에 시카고 타자기 세트로 나오면 그거 얼마나 보기 좋은데?(45구경에 강박관념 가진 1人)
이거 리뷰를 보면 드는 생각들이지만 내 경우도 그런 게 나는 꽤 만족한 반면 같이 본 친구는 그렇게 대단한 영화라고 생각치는 않더라(오히려 기대는 이놈이 더 했음). 나 역시도 편집 문제가 걸리긴 한다. 이게 러닝타임에 지장 있을 거 같았다면 애초에 거르고 할 얘기만 하는 게 중요하긴 한데.
그래도 사실상 몇십년 만에 나오는 만주물이라 맘에 든다. 앞으로 이런 장르물을 잘 살리면 좋겠다는(근데 한국 감독 중 장르물에 특화된 감독이 얼마나 될까;;;)
# by | 2008/08/01 17:33 | 영사실 | 트랙백 | 덧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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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성이 일본군 기마대 속으로 홀로 돌진하는걸 보고 창 대신 윈체스터 카빈을 든 조자룡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호찬님도 같은 생각이셨군요.
행인1님/ 그거 보고 싶은데 광주에서 하나 모르겠군요.
총구가 마치 발칸포처럼 생겨서, 영화를 위해 뽀대나게 만든 가상의 총인가 했는데
이번달 플래툰 잡지 STEN기관단총 특집기사를 보니까 그 총이 실제로 있는 겁니다.
"란체스터 기관단총"이라고, 1940년(!)에 생산된 기관단총이라는군요. 탄창을 옆으로 꽂는 것은 STEN에 계승되었고.
그리고 총구에 뚫린 많은 구멍들은 발칸포 총열이 아니라 그냥 방열구멍이랍니다. 중앙의 구멍이 진짜 총구고요.
서부극에 오토바이 나오는 건 존 웨인이나 제임스 코번 영화에서 많이 봐서, 오히려 별 이질감을 못 느꼈어요.
말로우님/ 전 서부극의 오토바이하면 추적자 브리스코가;;;
천지가이/ 화내면 어쩔건데!
rumic71님/ 정보 감사합니다. ^^